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한국문학의 현재,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 (고통의 기억, 여성의 시선, 애도와 문학)

by overinfo 2025. 7. 28.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이 오랜 시간에 걸쳐 천천히 써 내려간 작품으로, 한국전쟁의 상흔과 기억을 다룬 한국문학의 또 다른 분기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품은 고통과 기억, 그리고 애도의 언어를 통해 개인과 국가, 여성과 역사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정면으로 마주하며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오늘날 한국문학이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 작품을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리뷰사진

고통의 기억을 문학으로 옮기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이 10여 년 동안 품어온 질문들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 특히 1951년 거창 양민 학살을 비롯한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그 잔혹하고 비극적인 기억을 “기록되지 못한 목소리”의 형태로 되살리고자 합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 정은은 실종된 동료 인권운동가의 행적을 추적하며 그의 어머니, 그리고 수많은 죽은 자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추적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외면해온 상처를 직면하는 여정이며, 개인의 감정과 국가의 기억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한강은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그것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합니다.

 

노골적인 장면 없이도 그 무게는 충분히 독자에게 전달되며, 때로는 더 깊고 잔잔한 아픔으로 다가옵니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공감의 폭을 넓히는 한강 특유의 문체는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죽음’이 주제가 아니라, 그 죽음을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법, 그 잊힌 이름들을 되살리는 행위 자체가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임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 전쟁과 상처

한강은 이번 소설에서도 여성의 경험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남성 중심적 시선으로 기술되어 온 한국전쟁의 서사를 탈피하여, 여성들이 겪은 공포와 슬픔, 그리고 말할 수 없었던 고통을 담아냅니다.

 

정은과 송이 여사의 서사는 단지 가족을 잃은 여성의 비극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존엄과 기억, 책임과 애도를 이야기합니다. 특히 이 소설은 전쟁이 끝났다는 공식적 선언과는 다르게,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의 상처를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집중합니다.

 

송이 여사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아들의 유해를 찾기 위해 산과 들을 헤매며, 국가는 그들에게 “이미 지나간 일”이라며 침묵을 강요합니다. 이러한 서사는 전쟁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닌, 현재 진행형의 고통으로 존재함을 보여줍니다.

 

한강은 전작 『소년이 온다』에서도 광주항쟁을 여성과 아이의 시선으로 그렸듯이, 이번에도 주체로서의 여성을 소설 중심에 세웁니다. 감정에 기대지 않으면서도 울림 있는 언어로 여성의 삶과 감정을 담아내는 작가의 능력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탁월합니다.

 

그리고 독자는 그 문장 속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 상처와, 그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간 존엄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애도와 문학, 그리고 한국문학의 현재

『작별하지 않는다』는 단지 한 비극적 사건을 문학적으로 재현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한국문학이 다루어야 할 윤리적 책무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소설은 말해지지 못한 존재들, 잊힌 이름들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을 다시 인간의 세계로 데려오기 위해 애씁니다. 한강은 이 작품을 통해 문학의 가장 근본적인 역할—기억하고, 애도하고, 질문을 던지는 일—을 다시금 확인시켜 줍니다.

 

그 문장은 때로 차갑고, 때로 고요하며,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 날 만큼 아프지만, 결코 과장되거나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절제된 문체는 오히려 독자의 마음속에 더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문학이 줄 수 있는 진정한 감동의 힘을 증명합니다.

 

2024년 현재 한국문학의 풍경은 다양한 장르와 세대의 작가들로 가득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고통과 역사적 기억을 가장 진지하게 다루는 목소리는 필요합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 중심에서, 우리 사회가 외면했던 진실과 마주하게 하며, 문학이 여전히 유효한 도구임을 증명해 줍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의 문학적 깊이와 윤리적 사유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기억에 대한 존중, 그리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작별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지금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

결론: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할 이유

『작별하지 않는다』는 한강의 문학적 깊이와 윤리적 사유가 집약된 작품입니다. 단지 슬픈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기억에 대한 존중, 그리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작별하지 않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지금 한국문학을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