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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벨만스 리뷰 – 영화로 쓰는 기억의 연대기, 소년의 시선에서 본 인생

by overinfo 2025. 6. 10.

‘파벨만스’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성장영화로, 영화와 가족, 그리고 기억이라는 복합적 주제를 섬세하고 깊이 있게 다룬다. 주인공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세상은 때론 잔혹하고 때론 따뜻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결국 한 인간이 예술가로 성장하는 토대가 된다. 감성적이면서도 담백한 연출은 관객에게 진한 여운을 남긴다.

파벨만스 리뷰

 

카메라 너머의 진실 – 소년의 눈으로 본 세계의 단면

‘파벨만스(The Fabelmans)’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삶을 들여다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서사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헌사다. 이 작품은 단순한 성장 영화나 가족 드라마가 아니라, 기억의 단면과 감정의 잔상들을 촘촘히 이어 붙여 한 인물이 예술가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펼쳐낸다. 현실과 픽션의 경계에 서서, 감독은 자신의 유년 시절을 바라보되 그 기억을 낭만화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영화는 주인공 새미 파벨만이 어린 시절 처음 영화관에서 ‘지구에서 가장 조용한 순간’을 경험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스크린 위에서 펼쳐지는 기차 충돌 장면은 그에게 충격이자 깨달음이며, 동시에 영화라는 세계에 눈을 뜨는 계기였다. 이후 그는 아버지의 8mm 카메라를 손에 쥐고 직접 장면을 연출하고 편집하며, 스스로의 감정과 관계를 해석해 나가게 된다. 서론의 핵심은 바로 이 ‘해석’에 있다. 새미는 단순히 영화를 찍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간의 갈등과 비밀, 어른들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고자 영화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카메라는 그에게 도피처가 아니라 진실을 직시하게 하는 창이다. 가족 여행 중 촬영된 한 장면에서 그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절친과 감정적으로 얽혀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 사실은 그의 세계를 뒤흔든다. 하지만 그는 그 진실을 폭로하기보다, 필름 위에 조용히 남겨둔다. 영화는 성장의 고통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주 일상적이고 조용한 사건들이 주인공의 감정을 바꾸고 성숙하게 만든다. 부모의 갈등, 이사와 학교생활,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경험들이다. 그러나 그 안에 숨어 있는 디테일과 감정의 결은 대단히 섬세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부모의 행동이나 형제자매의 침묵, 타인의 미묘한 감정 표현을 지금의 시선으로 다시 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관객 역시 자기 삶의 장면들을 되새기게 되고, 그 안에서 발견한 감정들을 정리해 볼 기회를 얻게 된다. 서론은 그렇게, 모든 이가 가진 ‘내면의 필름’을 상기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 결국 ‘파벨만스’는 예술이란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며, 영화는 기억을 구성하고 관계를 이해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이 영화가 단순한 회고록 이상의 깊이를 지닌 이유다.

 

영화로 그리는 가족의 초상 – 사랑과 상처, 이해의 경계

본론에서는 새미의 가족이 중심에 놓인다. 그의 아버지 버트는 과학자이며 논리적인 사고를 지닌 인물이고, 어머니 미츠는 예술적 감성과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피아니스트다. 이 둘의 성향은 극명하게 대비되며, 영화는 그 대비 속에서 부부 간의 균열과 자식들에게 전해지는 감정의 잔향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새미는 어머니로부터 예술의 감수성과 상상력을, 아버지로부터 현실을 살아가는 기술과 규범을 물려받는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그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혼란을 겪는다. 특히 어머니 미츠와 절친 베니 사이의 미묘한 감정은, 가족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며, 새미의 정체성과 시선에도 중대한 영향을 준다. 이 영화에서 감정은 격정적으로 폭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면은 고요한 침묵, 짧은 눈빛,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뤄져 있으며,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관객 스스로가 해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새미가 어머니에게 그 장면이 담긴 필름을 보여주는 장면은 대사 하나 없이도 어마어마한 감정의 폭발을 느끼게 한다. 충격, 수치심, 슬픔, 그리고 해방감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합적인 순간이다. ‘파벨만스’는 상처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것을 비난하지 않는다. 부모는 완벽하지 않지만, 그들의 사랑이 거짓이었던 적은 없다. 새미는 점차 부모의 결정과 행동을 이해하게 되고, 그것이 그에게도 성숙의 일환이 된다. 이는 단순히 사춘기를 지나 어른이 되어가는 전통적인 성장 서사가 아니라, 감정의 성숙에 관한 이야기다. 본론에서는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어떻게 ‘관계’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 주는지를 강조한다. 새미는 카메라를 통해 가족을 보고, 친구를 보고, 사랑을 본다. 그는 그것들을 직접 경험하면서도, 한 발짝 떨어져 다시 필름 속에서 바라봄으로써 감정을 정리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이는 곧 예술가로서의 자아가 형성되는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모든 감정의 흐름은 영화의 톤과 리듬에 그대로 반영된다. 급격한 전환 없이, 서정적이고 조용한 호흡으로 서사가 이어지며, 관객은 어느새 그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다. 감정이 크지 않지만 오래 남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 삶에서도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벨만스’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예술로 완성된 기억 – 삶을 관통하는 감정의 잔상

‘파벨만스’의 결말은 관객에게 격한 감정을 유도하지 않는다. 오히려 영화는 아주 조용히, 하지만 또렷한 감정선을 유지한 채 새미의 삶과 예술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는 영화학교에 진학하고, 유명 감독 존 포드를 만나는 장면에서 영화는 그 의미심장한 한 줄기로 마무리된다. “수평은 지루하고, 수직은 흥미롭다”는 포드의 말은 단순한 미장센 조언을 넘어서, 인생을 바라보는 태도를 암시하는 말로 받아들여진다. 결론에서 이 영화가 강조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필름’을 찍고 있다는 것. 어떤 이는 그것을 실제 카메라로 남기고, 또 어떤 이는 기억과 감정으로 간직한다. 삶의 장면들은 크고 작은 상처와 기쁨으로 구성되며, 그 모든 순간이 모여 현재의 우리가 된다. ‘파벨만스’는 그 사실을 감상적으로 포장하지 않고, 담담하게 전달하며 관객 스스로 그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이 영화는 상처에 대해 말하지만, 치유를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이해’라는 이름의 감정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가족은 때때로 실망스럽고, 인생은 쉽게 풀리지 않으며, 예술은 종종 아픔을 통해 태어난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면, 그것은 결코 불완전한 것이 아니다. 결말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그건 단순히 새미의 이야기가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한 번쯤 부모를 오해하고, 사랑을 확인하지 못하고, 지나간 기억을 후회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 장면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자주 질문하게 된다. “나는 제대로 보고 있었던 걸까?” ‘파벨만스’는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질문을 던질 수 있게 해주는 것, 바로 그것이 예술의 역할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점에서 탁월한 성취를 이룬다. 스필버그는 자기 삶을 꺼내놓음으로써, 우리 각자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결국 이 영화는 말한다. 기억은 흐릿해질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는 예술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가장 따뜻한 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