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링 로맨스’는 기존 멜로 장르의 공식을 완전히 뒤틀며 블랙코미디, 뮤지컬, 스릴러 요소를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이다. 이원석 감독의 실험적 연출과 이하늬, 이선균, 공명 배우의 과장되면서도 세밀한 연기는 이 낯설고도 신선한 로맨스를 특별한 경험으로 탈바꿈시킨다. 로맨스에 숨겨진 억압과 해방의 주제를 익살스럽게 풀어낸 이 작품은 장르 혼종의 매력을 극대화한다.

로맨스를 해체한 블랙코미디의 유쾌한 반란
‘킬링 로맨스’는 전형적인 로맨틱 서사의 틀을 과감히 부수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관계의 얽힘과 해방을 그려낸다.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로 시작하는 듯하지만, 이내 블랙코미디, 판타지, 스릴러, 심지어 뮤지컬적 요소까지 뒤섞이며 기존 장르 구분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처럼 다양한 장르가 혼재한 가운데서도 영화가 결코 산만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감독 이원석 특유의 감각적인 연출과 배우들의 과감한 연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한류스타로 살아가던 ‘여래’(이하늬 분)가 돌연 은퇴하고, 외딴섬에서 괴짜 재벌 ‘조나단’(이선균 분)과 결혼하며 시작된다. 겉보기엔 이국적인 럭셔리 로맨스로 보이지만, 곧 이 관계의 중심이 병적으로 억압적이며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여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통제받고, 섬이라는 공간은 일종의 감옥처럼 기능한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위치와 자유에 대한 상징으로 읽히며, 영화는 이러한 억압을 과장된 유머와 기괴한 미장센으로 치환해 낸다. 공명은 여래와 조나단 사이에 끼어드는 ‘범우’ 역으로 등장하며, 억눌린 현실 속에서 일말의 가능성과 해방을 꿈꾸는 존재로 기능한다. 범우는 여래에게 ‘탈출’을 제안하며, 둘은 조나단을 죽이기 위한 엉뚱하면서도 필사적인 계획을 세운다. 이 과정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들은 만화적이고 유치한 듯하지만, 그 이면에는 무거운 주제들이 녹아 있다. 사랑이란 이름 아래 감내해야 했던 폭력, 자유를 향한 절박한 몸짓,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허용해 버린 사회적 무관심까지. ‘킬링 로맨스’는 이 모든 것을 웃음으로 포장하되,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이처럼 영화는 장르적 전복을 통해 익숙했던 감정을 낯설게 만든다. 우리가 당연히 받아들였던 로맨스의 규칙들 — 헌신, 운명, 희생 — 은 여기서 의심되고, 해체되며, 마침내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된다. 그로 인해 관객은 웃으면서도 불편함을 느끼고, 과장된 장면 속에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킬링 로맨스’가 가진 가장 큰 미덕이다.
연기, 연출, 음악이 어우러진 장르 실험의 진수
‘킬링 로맨스’의 매력은 단지 기이한 이야기 구조에 그치지 않는다. 이 영화는 연기, 미장센, 사운드, 편집 등 모든 영화적 장치를 총동원하여 ‘장르 실험’이라는 목표를 충실히 구현해낸다. 특히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핵심적 요소였다. 이하늬는 극 중 여래를 통해 기존의 여성상과는 다른 존재감을 발산한다. 한때는 모든 주목을 받던 스타였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억눌린 존재로 전락한 그녀는 과장되고 희화화된 연기 스타일을 통해 억압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드러낸다. 이하늬의 연기는 ‘진지하게 웃기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고전적인 희극 연기에서 모티브를 따온 듯한 과장된 대사 톤과 표정은 캐릭터의 내면을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선균은 조나단 역할을 통해 기괴함과 매력을 동시에 발산한다. 억압적인 성격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우스꽝스럽고, 폭력적이지만 동시에 무능해 보이는 이중적 캐릭터는 그가 아니면 살릴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그가 부르는 기괴한 노래, 불안정한 억양, 과도한 리액션은 관객에게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묘한 불쾌감을 남긴다. 이는 ‘폭력의 익숙함’에 대한 메타포처럼 작용한다. 공명의 캐릭터는 이 혼돈 속에서 관객이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중심축 역할을 한다. 연기 톤은 두 주연배우보다 절제되어 있으며, 그 덕분에 영화의 감정선에 안정감을 부여한다. 그의 평범함은 오히려 이 기이한 세계에서 관객과 연결되는 통로 역할을 하며, 가장 현실적인 인물로 자리매김한다. 또한 영화의 시각적 스타일은 화려하면서도 과장되어 있으며, 이는 극의 비현실성과 상징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핑크빛 조명, 만화적인 의상,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 세트 등은 영화가 의도적으로 ‘진짜 같지 않음’을 강조하는 장치들이다. 여기에 음악은 뮤지컬의 요소를 빌려오면서도 아이러니한 가사를 통해 작품의 메시지를 재확인시킨다. 사운드와 장면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어우러지는 구조는 ‘킬링 로맨스’를 단순한 블랙코미디가 아닌 ‘시청각적 체험’으로 끌어올린다.
기괴함을 통한 진정한 해방의 이야기
‘킬링 로맨스’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정당화되었던 억압과 폭력에 대해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해방’이다. 그것은 사랑의 해체이자, 관습에 대한 반기이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주체적인 회복이다. 여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연인이 아닌, 자신을 구원할 주체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리고 그 해방의 방식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눈물겨운 희생이 아닌, 말도 안 될 정도로 기괴하고 코믹한 방식이다. 그 기괴함이야말로 이 영화의 정체성이자 힘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로맨틱 드라마 속에서 ‘사랑은 인내이고,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아들여 왔다. 그러나 ‘킬링 로맨스’는 그 공식을 뒤집는다. ‘이건 아니다’라고 소리칠 수 있는 용기, ‘탈출’이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 그리고 마침내 주체로 서는 인간의 이야기가 이 기이한 코미디 속에 정교하게 녹아 있다. 영화는 이러한 전복을 통해 관객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진짜 ‘사랑’을 알고 있는가? 혹은 우리는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관계의 억압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이런 질문은 단순한 연애 감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 전반의 관계, 권력, 구조 속에서의 자아를 되묻는 계기를 제공한다. ‘킬링 로맨스’는 그래서 단순한 장르 실험작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당연하다고 여겼던 ‘로맨스’라는 세계를 뒤흔드는 혁명적인 유쾌함이다. 기괴함 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질문들, 코미디라는 탈을 쓴 심각한 고발, 그리고 결국엔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자기 해방’의 이야기. 이런 점에서 ‘킬링 로맨스’는 오래도록 기억될 새로운 형태의 로맨스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