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은 1980년대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을 배경으로, 17살 소년 엘리오와 대학원생 올리버 사이에서 피어난 첫사랑을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짧고 강렬했던 사랑의 기억, 말로 다 전할 수 없었던 감정의 떨림, 그리고 이별이 남긴 흔적들을 아름다운 풍경과 클래식 음악 속에 녹여낸 이 영화는, 청춘과 사랑의 본질에 대해 깊은 울림을 준다.
이탈리아의 햇살 아래,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감정이 피어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마치 한 편의 기억처럼 흐른다. 계절은 여름이고, 장소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 엘리오는 유대계 프랑스인 가정에서 자라난 17세 소년으로, 여름방학 동안 가족의 별장에서 지낸다. 매년 아버지는 대학원생 인턴을 초대하고, 그 해의 손님은 미국인 올리버다. 첫 만남은 어색하다. 엘리오는 올리버의 느긋한 태도에 반감을 느끼고, 그는 자신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엘리오는 점차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에 휩싸이게 된다. 처음엔 질투인지, 호기심인지 알 수 없었던 감정은,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 감정을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는 데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대사보다 눈빛, 손짓, 침묵 속에서 감정을 쌓아간다. 엘리오가 올리버를 향해 처음 손을 내밀 때, 둘이 자전거를 나란히 타고 달릴 때, 음악을 함께 들으며 무심한 척 시선을 피할 때—이 모든 장면은 설명보다 더 깊은 감정의 진동을 전한다. 서론에서 이 영화는 단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무엇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는 순간의 모든 감정과 흔들림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그 여름의 온도를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한다.
사랑은 말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감정이다
영화의 중반부부터, 엘리오와 올리버의 관계는 명확한 방향을 향해 움직인다. 둘은 서로를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게 되고, 마침내 그 감정은 신체와 감정의 결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영화는 이를 선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하고 사려 깊게,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의 맥락과 떨림을 포착한다. 그들이 서로를 부르는 방식—“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은 단순한 로맨틱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의 존재를 내 안에 온전히 담아내고 싶은 가장 강렬한 감정의 표현이다. 이 말은 두 사람의 감정이 얼마나 깊고 일체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첫사랑이자, 동시에 자신을 발견하는 거울이다. 올리버를 통해 그는 자신의 욕망, 불안, 기쁨, 두려움을 경험하고, 그 모든 감정을 처음으로 직면한다. 한편 올리버 역시 엘리오에게 감정이 있으면서도, 자신의 현실과 신분, 사회적 위치를 의식하며 관계를 조심스럽게 다룬다. 이들의 관계는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진실하다. 영화는 사랑이 반드시 지속되어야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 자체가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흔적을 남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본론에서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의 시작, 전개, 이별까지의 모든 단계를 설명이나 정의 없이, 감각과 시간의 흐름 속에 녹여냄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 여름의 엘리오’가 되어 그 감정을 직접 느끼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경험은 누구에게나 낯설지만 동시에 아주 익숙한 기억의 형태로 남는다.
그 여름의 끝,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영화의 마지막 20분은, 극적인 사건 하나 없이도 가장 강력한 정서적 여운을 남긴다. 여름이 끝나고, 올리버는 돌아간다. 전화로 이별을 고하는 장면에서, 엘리오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을 삼킨다. 그리고 겨울, 벽난로 앞에서 멍하니 불꽃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엘리오의 얼굴이 카메라에 담긴다. 관객은 그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그의 감정 안에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장면은 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클로즈업 중 하나로 꼽히며, ‘첫사랑의 상실’을 시각적으로 완성한다. 아버지와의 대화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아버지는 엘리오에게 말한다. “네가 겪은 이 감정을 애써 잊지 마라. 너무 아파도, 그건 소중한 거야.” 이 대사는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사랑은 반드시 영원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일시적이었고, 아팠고, 끝났다고 해도, 그 감정은 진짜였으며, 우리를 변화시킨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정을 기억하며 조금 더 어른이 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사랑에 빠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을 잃는다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성장시키는지를 절제된 시선과 감각적인 연출로 담아낸다. 영화는 결코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감정을 이상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모든 과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엘리오이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여름, 그 사람, 그 감정은 잊히지 않는다. 그것이 사랑이고, 그것이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