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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 폐허 위에 세워진 공동체, 인간 본성의 시험대

by overinfo 2025. 6. 9.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거대한 지진으로 서울이 초토화된 이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인간 군상을 통해 공동체, 권력, 윤리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박서준, 이병헌, 박보영 등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와 서늘한 연출이 어우러져, 재난 이후 진짜 위기는 자연이 아니라 사람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수작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리뷰

 

재난은 시작일 뿐 – 무너진 도시, 드러나는 본능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지 재난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재난은 이 이야기의 출발점일 뿐이며, 진짜 주제는 그 이후의 인간관계, 공동체, 윤리의 붕괴와 재편에 있다. 영화는 대지진으로 인해 서울 전체가 무너진 뒤, 홀로 무사히 남은 황궁 아파트를 중심으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가 너무도 익숙하게 여겼던 ‘사회’라는 구조가 어떤 식으로 무너지고 다시 세워지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영화는 곧 아파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권력의 이동을 통해 극단적인 상황 속 인간의 본성을 조명한다. 가장 인상적인 건 이 공간이 마치 하나의 ‘작은 사회’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외부와 단절된 이 공간에서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고, 그것은 결국 누군가의 리더십과 다수의 암묵적 동의로 형성된다. 이때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영탁(이병헌 분)이다. 그는 위기 속에서 우유부단한 주민들을 이끌고 ‘질서’를 만들기 위해 나서지만, 그 질서의 방식은 점점 독재와 통제, 그리고 배제로 흘러간다. 그의 카리스마는 처음엔 사람들에게 안정을 주지만, 곧 ‘공포를 통한 통제’로 변모하며, 아파트 안의 공기는 점차 서늘해진다. 반면 민성(박서준 분)과 명화(박보영 분) 부부는 처음엔 생존에만 집중하지만, 점차 이 아파트 공동체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목소리를 내고, 때론 침묵하며, 때론 외면하지만, 결국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다운 선택을 고민하게 된다. 서론에서 영화는 명확히 선언한다. 진짜 재난은 자연재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지고, 규범이 사라지며, 인간이 인간을 외면하는 순간 시작된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이 문제의식을 섬세하게 풀어내며, 폐허 위에 서 있는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삶을 지켜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질서와 폭력 – 유토피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본론은 황궁 아파트 내부에 형성되는 권력 구조와 그에 따른 배제의 메커니즘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아파트는 외부 난민들의 침입을 막기 위해 경계를 세우고, 거주민과 비거주민을 나누며, 자신들만의 생존 공동체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질서 유지’라는 명분은 점점 ‘배제와 폭력의 정당화’로 전환된다. 영탁은 주민 대표로 선출되며 강력한 리더십을 행사하지만, 그 방식은 점점 전체주의적 양상을 띠게 된다. 그가 내세우는 명분은 공동체의 생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들이 늘어난다. 그는 외부인을 무자비하게 몰아내고, 내부의 이견을 억압하며, 아파트의 안전을 이유로 비인간적인 결정을 내린다. 이와 대비되는 인물이 민성이다. 그는 처음엔 중립적인 입장을 유지하지만, 점점 공동체 안의 문제를 인식하고 내적 갈등을 겪는다. 영화는 그가 정의를 외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작은 용기’의 중요성을 말한다. 명화 역시 조용하지만 중요한 목소리를 낸다. 그녀는 자신보다 약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으려 애쓰며, 공동체가 가진 따뜻함의 마지막 끈을 붙든다. 이런 갈등은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다. 내부의 반발자들이 ‘숙청’되고, 마치 종교적 신념처럼 ‘아파트의 질서’를 수호하려는 자들과 이의 제기자들 간의 대립이 심화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단지 한 아파트의 이야기를 넘어, 사회 전체의 축소판으로 기능한다. 외부인을 향한 공포, 내부의 적을 색출하려는 분위기, 집단 히스테리와 침묵의 공범자들.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지난 역사 속에서도 숱하게 마주했던 풍경이다. 연출 면에서는 극단적 상황을 사실감 있게 재현하면서도, 감정 과잉 없이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특히 이병헌의 연기는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의 이중성을 실감 나게 표현하며, 그의 눈빛 하나, 말투 하나에 담긴 긴장은 영화를 지배한다. 박서준과 박보영 역시 내면의 변화와 갈등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관객이 인물에 깊이 공감하게 만든다. 결국 본론은 묻는다. ‘질서’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포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타인을 배제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며, 공동체를 유지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 그것이 과연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단정적으로 답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 스스로 그 윤리적 딜레마를 끌어안게 만든다.

 

무너진 이상, 남겨진 인간성 – 폐허 위의 희망은 어디에

영화의 후반부, 아파트 내부는 점점 혼란에 휩싸인다. 영탁의 리더십은 한계에 다다르고, 주민들 사이의 신뢰는 무너진다. 공동체를 유지하겠다던 초반의 의지는 어느새 공포와 이기심에 기반한 통제 체제로 전락한다. 결국 이는 내부 붕괴로 이어지고, 아파트는 더 이상 ‘유일한 안식처’가 아닌, 또 다른 지옥으로 변해간다. 이 과정에서 민성과 명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인간다움’을 지키려 한다. 민성은 끝내 침묵을 깨고 행동으로 저항하고, 명화는 누군가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위험을 감수한다. 이들의 선택은 극적인 변화나 혁명은 아니지만, 인간이 여전히 ‘선택할 수 있는 존재’ 임을 보여준다. 영화는 바로 그 선택의 순간을 가장 강렬하게 포착한다. 결말에서 폐허가 된 도시를 떠도는 인물들의 모습은, 잿더미 속에서도 여전히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삶은 완전하지 않고, 희망으로 가득 차 있지도 않지만, 적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은 남아 있다. 이 장면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함축한다. 진정한 유토피아는 외형이 아닌, 사람들의 선택과 관계 속에 있다는 것. 감독은 마지막까지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면서도, 인물들의 내면에는 따뜻한 온기를 남긴다. 이는 단순한 양비론이나 냉소적 시선이 아니라,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되, 그 안에서도 인간의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 균형 잡힌 태도다. 이런 연출 덕분에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끝까지 무게감과 울림을 잃지 않는다. 결국 이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라면 그 아파트에 살고 싶겠는가?’ 물리적으로는 안전하지만, 윤리적으로는 침묵과 폭력이 지배하는 곳. 그런 공간에서 우리는 누구이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영화는 이 질문을 관객에게 끝까지 안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단순한 재난물이나 사회비판극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떤 상황에서도 여전히 고민하고, 갈등하며, 선택할 수 있다는 희망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폐허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 그 안에 담긴 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인간성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