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지옥’은 초자연적 존재가 등장해 특정 인물을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충격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죄와 심판, 종교와 권력, 그리고 인간 존재의 윤리적 문제를 파고드는 철학적 드라마다. 공포를 넘어 도덕과 믿음의 본질을 되묻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수작이다.
신의 심판인가, 인간의 공포인가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연상호 감독의 작품 ‘지옥’은 전작 ‘부산행’, ‘반도’와는 전혀 다른 결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다. 이 드라마는 초자연적 존재가 예고 없이 등장해 특정 인물에게 “너는 언제 죽고 지옥에 간다”는 선고를 내리고, 그 시각이 되면 ‘지옥의 사자’들이 등장해 해당 인물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고 불태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이 강렬한 초반부는 단순한 괴물이나 좀비가 아닌, ‘초월적 존재에 의한 심판’이라는 설정으로 인간의 근본적인 두려움을 자극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공포의 현상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사회는 그것을 설명하려는 시도를 중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진리회’라는 신흥 종교 단체가 등장하여, 이 사건들을 ‘신의 의도’라고 주장하며 세를 확장한다. 이들은 “심판은 죄에 대한 응보”라는 프레임을 고착시키고, 대중은 점차 ‘지옥의 사자’가 등장한 사람은 반드시 죄가 있었을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이것은 공포가 신앙으로, 신앙이 이데올로기로 전환되는 과정을 집요하게 묘사하는 구조로 발전한다. ‘지옥’은 단순한 초자연 현상을 보여주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인간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두려움은 어떻게 조작되고 이용되는가?”, “죄와 벌의 기준은 누가 결정하는가?”와 같은 복합적인 질문을 던지며 시청자 스스로가 도덕적 기준과 종교적 신념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서론에서는 ‘지옥’이 다루는 세계관과 그 설정의 파격성, 그리고 이 드라마가 던지는 철학적 물음이 단순한 오락 이상의 의미를 갖는 작품임을 설명했다. 특히 ‘지옥’은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하며,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는지를 통렬히 보여준다.
죄는 누구의 것인가 – 신념이 만든 폭력
‘지옥’에서 가장 강렬한 인물은 단연 ‘정진수’다. 그는 새진리회의 교주로 등장하여 지옥의 심판을 ‘신의 정의’로 포장하고, 대중을 선동한다. 정진수는 스스로의 카리스마와 선지자적 이미지로 대중을 통제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의 주장에 의문이 생긴다. 그는 진정으로 신의 뜻을 전달하는 인물인가, 아니면 공포를 도구로 삼은 또 다른 독재자인가? 여기에 ‘화살촉’이라는 극단적 추종자 집단이 결합되며 폭력은 제도화된다. 이들은 심판을 받은 사람과 가족, 나아가 그와 관련된 이들에게까지 린치를 가하며, ‘정의’라는 이름 아래 무차별적 폭력을 휘두른다. 이 모습은 과거 현실 속 종교적 광신, 혹은 정치적 폭력과 닮아 있어 더욱 소름을 유발한다. 드라마는 이 과정을 통해, 두려움과 신념이 결합될 때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변호사 ‘민혜진’과 방송국 PD ‘배영재’ 부부는 이 시스템의 문제점을 파헤치고자 한다. 이들은 심판이 ‘무고한 자’에게도 내려진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이를 세상에 알리려 한다. 그러나 진실은 곧 숨겨지고, 권력은 진실보다 공포를 선택한다. 이 갈등 구조는 진실과 정의가 이익과 통제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암시하며, 현실 사회의 권력 구조와 언론 통제 문제를 은유한다. 또 다른 핵심 장면은 ‘신생아 심판’이다. 아무런 죄도 지을 수 없는 생명에게도 지옥의 사자가 내려온다는 사실은, 새진리회의 교리를 근본적으로 뒤흔든다. 이는 죄와 벌의 기준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불완전한지를 드러내며, 우리가 믿어왔던 절대적 진리가 실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일 수 있음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본론에서는 ‘지옥’이 제시하는 도덕과 신념, 권력과 진실의 복잡한 얽힘을 살펴보며, 인간이 사회적 시스템 속에서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또 그것을 내면화하는지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지옥’은 괴물 없이도 얼마나 무서운 사회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신은 어디에 있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가
‘지옥’의 마지막은 또 하나의 심판 장면과 함께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끝나는 이 드라마는, 신의 존재를 확증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것은 “당신은 이 상황에서 어떤 믿음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시청자에게 던진다. 극 중 새진리회는 진실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대중의 믿음을 조종하고, 일부는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인다. 이는 종교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진정한 신앙은 공포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이해와 공감에서 시작되는가? ‘지옥’은 이 질문을 단순한 종교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리가 사회에서 믿고 따르는 모든 시스템과 규범에 적용한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죽은 자가 되살아나는 장면은 ‘심판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죄의 응보인가, 아니면 새로운 기회를 위한 것인가? 드라마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시청자 각자가 스스로의 윤리적 기준과 신념 체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옥’은 현실과 맞닿은 주제를 초현실적 설정으로 끌어내면서도, 매우 구체적인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공포를 믿음으로, 믿음을 통제로 바꾸는 과정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드라마는 말한다. “가장 무서운 지옥은 죽은 뒤에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수 있다”라고. 결국 ‘지옥’은 괴물 없는 공포, 초자연적 존재 없는 폭력, 신 없는 신념을 다룬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이 사회의 풍경일 수도 있다. 당신은, 과연 무엇을 믿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