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이 자오 감독의 ‘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내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으로, 전통적인 슈퍼히어로 서사에서 벗어나, 신적인 존재들이 인간과 함께 살아가며 겪는 고뇌와 정체성, 그리고 선택에 관한 이야기를 서정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장대한 시간과 신화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이터널스는 ‘구원자’가 아닌 ‘외로운 존재들’로서 묘사된다.

영원을 살아가는 존재의 고독, 그리고 그들이 지켜온 인간의 시간
‘이터널스’는 MCU 안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영화다. 기존의 히어로들이 현재를 살아가며 사건을 해결하는 구조였다면, 이터널스는 수천 년을 살아온 ‘신적 존재들’의 이야기다. 그들은 우주의 창조자 ‘셀레스티얼’에 의해 창조되어, 지구에 파견되어 인간을 디비언츠라는 괴물로부터 보호해 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터널스는 단지 지키는 자로만 남지 않게 된다. 그들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함께 살아가며, 인간의 감정과 문명, 전쟁과 사랑을 지켜본다. 특히 서사 초반에 등장하는 바빌로니아, 마야 문명, 히로시마 등의 역사적 배경은 이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인간 곁에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그 긴 시간 속에서 이터널스는 점점 더 인간에 대해 질문을 품는다. 왜 우리는 이들을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진정한 ‘구원자’인가, 아니면 도구인가? 이 질문은 영화의 중심축이 된다. 서론에서 ‘이터널스’는 관객에게 단지 우주적 위협에 맞서는 슈퍼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의 형상을 한 존재들이 인간성과 윤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 대한 깊은 사유를 던진다. 그리고 그 사유는 곧 존재론적 외로움과 충돌로 이어진다.
선택의 순간에 드러나는 진짜 정체성 – 신이기를 거부한 그들
이터널스의 가장 큰 전환점은, 그들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어왔던 사명이 사실은 더 큰 창조를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시작된다. 지구는 곧 새로운 셀레스티얼의 탄생을 위한 ‘알 속’이고, 이터널스는 그 탄생을 돕기 위한 존재였던 것이다. 인간의 번영은 곧 셀레스티얼의 각성을 위한 에너지였고, 이터널스가 수천 년간 지켜온 인간 문명은 결국 다른 생명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 운명에 놓인다. 이때 각 이터널스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믿음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리더였던 아약은 인간에게 감정을 품게 되었고, 인간을 위해 ‘신의 뜻’을 거스르기로 한다. 서커스는 사랑을 알게 되었고, 파스토스는 인간의 파괴성 속에서도 희망을 보았다. 드루이그는 인간에게 더 이상 상처를 줄 수 없다며 집단을 떠나고, 킹고는 끝까지 중립을 지키지만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 이처럼 각 캐릭터는 인간적인 선택을 하게 되면서, 더 이상 ‘절대적 존재’가 아닌, 윤리적 딜레마 속에서 흔들리는 존재로 묘사된다. 본론에서 ‘이터널스’는 단지 거대한 세계관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과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감정적 충돌을 전면에 내세운다. 사랑, 배신, 희생, 갈등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영원한 존재에게도 고통스러운 질문이라는 것을 영화는 일관되게 전달한다.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결국 그들이 선택한 길은 ‘창조’나 ‘파괴’가 아닌, ‘멈춤’이라는 점이다. 셀레스티얼의 탄생을 막음으로써, 그들은 새로운 신화를 쓰기보다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공존’을 택한다. 그것이야말로 ‘신성’보다 더 인간적인 선택이었다.
신도 고독하고, 선택은 언제나 불완전하다 – 이터널스의 인간적인 여운
영화의 마지막은 서사적으로 열린 결말을 택한다. 일부 이터널스는 지구에 남고, 일부는 셀레스티얼에 의해 우주로 끌려가며, 그들의 다음 여정은 암시만 남긴 채 끝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터널스가 더 이상 ‘절대자’로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감정을 가졌고, 각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반드시 정답이 아니지만, 책임 있는 행동이었다. 영화는 신화를 구축하기보다, 신화를 해체하는 데 집중한다. ‘이터널스’는 마블의 다른 영화들과는 확실히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다. 빠른 전개, 유머, 전투 중심의 연출보다, 느리고 사색적인 전개를 택했고, 캐릭터들은 육체적 강함보다 정신적 갈등을 중심으로 서사에 서 있다. 클로이 자오의 연출은 이런 철학적 주제를 자연광과 정적인 미장센으로 풀어내며, 관객에게 깊은 여운을 남긴다. 결론에서 이 영화는 말한다. “영원한 존재도 흔들릴 수 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야말로 진짜 존재의 증거다.” 이터널스는 단지 새로운 히어로의 등장 그 이상이다. 그들은 ‘신도 결국 외롭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고, 우리가 인간으로서 매일같이 겪는 사랑, 고민, 선택, 상실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보편적인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존재들이다. 결국 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을 지킬 것인가?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 삶의 윤리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