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터널스(Eternals)’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흐름을 제시한 작품으로, 영원한 존재들이 지구의 역사와 함께해 온 서사를 담고 있다. 초인적 능력을 지녔지만 인간처럼 고뇌하는 이터널스는, 생명과 진화, 창조주와의 관계 속에서 윤리적 딜레마를 마주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철학적 연출과 넓은 스케일의 비주얼이 결합된 이 영화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넘어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시도였다.
신은 왜 침묵했는가, 인간의 시간 속에서
‘이터널스’는 MCU의 이전 흐름과는 명확히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그것은 거대한 액션이나 캐릭터 간의 유쾌한 케미보다는, 인류 문명과 함께해 온 초월적 존재들의 역사와 그들의 윤리적 선택에 초점을 맞춘다. 약 7천 년 전, 우주적 존재 셀레스티얼 ‘아리셈’의 명에 따라 지구에 파견된 이터널스는 인류를 위협하는 ‘데비안츠’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그들은 오직 데비안츠에만 개입할 수 있을 뿐, 전쟁, 학살, 문명의 붕괴 등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비극에는 관여하지 못한다. 이 설정은 영화 초반부터 강한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신은 왜 인간의 고통에 침묵하는가?” 영화는 이 질문을 이터널스 각자의 내면 갈등과 연결시키며, 개별적 존재로서 그들의 정체성을 탐구해 나간다. 이터널스는 절대적 명령 아래 움직이지만,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간과 교류하면서 정서적, 윤리적 자아를 가지게 된다. 이로 인해 그들은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서론에서 ‘이터널스’는 단순히 신화적 존재들의 전투 서사가 아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고뇌와 사랑, 연민, 회의로 가득 찬 이야기임을 예고하며 시작된다. 이는 마블 영화 중에서도 가장 정적인 분위기를 띠지만, 그만큼 가장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미 깊다.
절대자의 명령과 자유의지, 균열 속에 피어난 인간성
‘이터널스’의 중심 갈등은 ‘계시’ 이후 본격화된다. 인간 문명이 성장함에 따라 지구 자체가 하나의 셀레스티얼 ‘티아맛’을 탄생시키기 위한 알과 같은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터널스의 사명은 데비안츠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셀레스티얼의 탄생을 돕기 위한 하나의 장치였다는 진실은, 이들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지구의 수십억 인류를 희생시켜야 티아맛이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이터널스는 분열된다. 일부는 창조의 순환이라는 대의에 동의하고, 일부는 인간과의 정서적 연대를 선택한다. 이카리스는 냉철한 신념을 지닌 채 임무를 수행하려 하며, 시르시는 인간의 감정과 생명의 고귀함에 더 가까워진다. 그들의 충돌은 단순한 힘의 싸움이 아닌, 세계관의 충돌이며, 철학의 대립이다. 이 영화의 특징은 히어로 개개인의 능력보다, 그들이 형성한 기억과 감정의 무게에 있다. 킹고는 유쾌한 성격을 지녔지만, 결정적인 순간 중립을 택하며, 스프라이트는 인간처럼 살 수 없다는 외로움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른다. 드루이그는 폭력과 억압을 멈추기 위해 인간을 지배하길 원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신적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내적 갈등을 겪는다. 본론에서 ‘이터널스’는 히어로가 아닌, 각기 다른 신화적 정체성을 가진 존재들의 심리극으로 전개되며, 고전 철학에서 논의된 ‘자유의지’와 ‘운명’의 개념을 현대적으로 풀어낸다. 이터널스는 신이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며, 그들은 결국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가 됨으로써 진정한 주체가 된다.
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택은 남는다
‘이터널스’는 많은 면에서 MCU의 기존 공식과 다르다. 대중적 유쾌함과 전형적인 히어로 서사를 기대했던 관객에겐 낯설고 이질적일 수 있지만, 이 영화는 새로운 질문을 던지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연 우리가 숭배하거나 따랐던 절대적 존재는 옳은가? 생명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보다 오래 살아온 존재들은 정말 인간보다 현명한가? 이 영화는 이런 질문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각 인물의 선택을 통해, 삶의 복잡성과 윤리적 무게를 체험하게 한다. 시르시는 결국 티아맛의 탄생을 막으며 인류를 지킨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더 이상 절대자의 도구가 아니라, 생명을 위한 능동적 주체가 된다. 하지만 그 대가는 가볍지 않다. 셀레스티얼 아리셈은 그녀와 일부 이터널스를 끌고 우주로 사라지며, 그들의 선택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결말은 닫히지 않은 열린 구조다. 이는 인간 역시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 결과를 살아가듯, 신의 자리에 있는 자들도 완전하지 않다는 함의를 담고 있다. ‘이터널스’는 슈퍼히어로라는 장르의 틀을 빌려 존재론, 종교, 윤리학 등 다양한 철학적 질문을 서사 속에 담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고요하고 우아한 시각미와 절제된 감정으로 구현한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모든 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사유하게 만들고, 여운을 남긴다. 그래서 ‘이터널스’는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가 재조명될 작품이다. 결국 이터널스의 이야기는 ‘신’의 이야기이기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모든 존재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 질문은,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