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악귀’는 전통 설화와 현대 미스터리 스릴러를 결합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두려움,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괴물 같은 현실을 파고드는 작품이다. 주인공들이 마주하는 ‘악귀’는 단순한 존재가 아닌, 사회 구조와 개인 감정이 뒤엉킨 복합적인 공포로 그려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 그 실체를 쫓다
‘악귀’는 겉으로 보기엔 전형적인 오컬트 드라마처럼 보일 수 있다. 귀신이 나오고, 살인이 벌어지며, 미스터리한 사건이 연이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귀신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공포와 죄책감, 그리고 사회 구조 안에서 억눌려 온 분노를 시각화한 드라마다. 공포의 실체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다. 주인공 구산영(김태리 분)은 어느 날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이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해 점점 변화하고 있음을 느낀다. 일상 속에 스며든 ‘악귀’는 처음에는 외부의 존재로 다가오지만, 점차 그녀의 내면과 동화되며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 악귀는 과거의 원한과 죽음의 고리가 얽힌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구산영이라는 인물 안에 축적된 두려움과 분노, 억압된 감정의 투영체이기도 하다. 드라마는 인간의 내면이 얼마나 쉽게 악으로 물들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정한 사건이나 강한 외부 자극이 없더라도, 사람은 자기 안의 어둠을 마주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극단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섬세하게 묘사한다. 이러한 설정은 ‘악귀’라는 존재가 단순한 괴물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것일 수 있다는 점에서 공포를 현실적으로 체감하게 만든다. 서론에서는 ‘악귀’가 다루는 공포의 본질이 단순한 외부의 위협이 아닌, 인간 내부에 잠재된 감정의 폭발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이 작품이 단지 무섭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라, 심리적, 사회적 메타포로 작동하는 심도 깊은 드라마임을 강조한다.
전통 설화와 현대 사회, 그 사이에 존재하는 악
‘악귀’는 한국의 전통 설화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며 독특한 세계관을 구축했다. 조상의 원혼, 무속 신앙, 저승과 이승의 경계 등은 오컬트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요소로 작용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의 폭력성과 무관심, 억압된 기억과 트라우마를 상징하는 장치로 사용된다. 특히 구산영이 겪는 변화는 단순한 귀신 들림이 아니라, 그녀가 사회에서 받은 억압과 개인적인 상처의 누적이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물로 읽힌다. 조연 캐릭터들도 이러한 세계관을 보완한다. 민홍사(오정세 분)는 무속과 과학 사이의 균형을 상징하며,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설명하는 인물이다. 그는 구산영의 변화에 가장 먼저 주목하며, 이를 단순한 정신적 이상이 아닌, 보다 깊은 원한과 사회적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이러한 접근은 ‘악귀’가 단순히 귀신을 퇴치하는 오컬트물이 아니라,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다룬 드라마임을 재확인시켜 준다. 드라마는 공포와 사회적 비판을 동시에 추구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연쇄자살, 청년 세대의 고립감, 가부장적 억압, 부의 불균형, 그리고 무속적 전통의 사라짐 등은 모두 악귀가 머무는 배경이 된다. 각 인물의 트라우마는 단순히 개인적 상처가 아니라, 구조적인 폭력의 결과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서의 ‘악’은 특정 인물이 아니라, 시스템과 관습이 만들어낸 산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악귀’는 단지 무서운 드라마가 아닌, 사회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읽힌다. 특히 구산영이 자신의 악귀를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각자 자기 내면에 숨겨진 불안과 트라우마를 직시할 용기가 필요하다는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우리 사회가 감정의 회피보다는 직면과 성찰을 통해 치유해야 함을 말하는 강력한 메시지다. 본론에서는 ‘악귀’가 공포를 표현하는 다양한 방식과 그 속에 녹아든 사회적 메시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 드라마는 장르물의 문법을 따르면서도, 그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며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공포의 진짜 얼굴은 ‘나’일 수 있다
‘악귀’는 종국에 이르러 시청자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던진다. 우리가 공포를 느끼는 대상은 귀신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감정, 혹은 도피해왔던 죄의식일 수 있다는 점이다. 구산영은 악귀를 외부에서 온 존재로 생각하며 그것을 몰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그것이 자신 안의 상처와 연결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 깨달음은 단순한 반전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공포라는 감정은 대부분 무지에서 비롯된다.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상상으로 그 실체를 만들어내고, 그 상상은 대개 가장 극단적인 두려움으로 채워진다. 하지만 ‘악귀’는 이러한 공포의 구조를 역으로 파고든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과거가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것이 이 작품의 궁극적인 메시지다. 드라마는 또한 ‘구원’에 대해 묻는다. 상처를 회피하지 않고 마주했을 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한가? 그리고 그 마주함은 누구의 도움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능한가? 구산영이 자신의 악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결국 그것을 넘어서려는 모습은 희망적이다. 비록 그 과정은 처절하고 고통스럽지만, 인간은 결코 악에 굴복하지 않고, 내면의 힘으로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는 서사가 담겨 있다. 결국 ‘악귀’는 공포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법, 그리고 상처 입은 자아를 돌보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이 드라마가 남긴 가장 큰 여운은 무섭다는 감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마주해야 한다는 책임감일지도 모른다. 공포는 피할 수 없지만, 직면할 수는 있다. 그리고 그 직면은 결국 인간을 성장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유일한 길이다. ‘악귀’는 말한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귀신이 아니라, 그 존재를 만들어낸 우리 자신일 수 있다고. 그렇기에 진정한 용기란, 어두운 방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 스스로와 마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