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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긴 어게인 리뷰 – 잃어버린 감정 위에 흐르는 음악의 재생 버튼

by overinfo 2025. 5. 28.

존 카니 감독의 ‘비긴 어게인(Begin Again)’은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감성 드라마다. 뉴욕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실패한 음반 프로듀서 댄과 상처받은 싱어송라이터 그레타가 만나 거리의 소리를 음악으로 바꿔가며 자신들의 삶을 재조립해 나간다. 음악의 진심, 관계의 회복, 도시의 숨결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시작’이 주는 울림을 깊이 있게 전달한다.

비긴 어게인 리뷰

 

“모든 것이 엉망인 순간, 음악은 다시 시작하게 한다”

‘비긴 어게인’의 시작은 끝에서부터다. 댄(마크 러팔로)은 잘 나가던 음반 프로듀서였지만, 시대의 흐름에 밀려 업계에서 버림받고, 가족과도 소원해진 인물이다. 반면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연인인 유명 가수 데이브(애덤 리바인)와 함께 음악을 해왔지만, 그의 배신으로 깊은 상처를 안고 있다. 두 사람은 뉴욕의 작은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그레타가 부르는 조용한 노래를 들으며, 댄은 눈을 감고 그녀의 노래에 편곡과 연주가 덧입혀지는 상상을 한다. 이 장면은 ‘비긴 어게인’의 핵심을 압축한 장면이다.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과 감정을 더해 다시 보는 힘이다. 서론에서 영화는 실패와 상실이라는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그 감정이 종착지가 아닌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는 기반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새로운 시작은 거창한 변화나 극적인 계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에 울려 퍼지는 한 곡의 음악, 우연히 마주친 목소리, 그리고 그 진심을 알아보는 누군가의 귀에서 비롯된다.

 

거리 위의 녹음, 마음 속의 감정 복원

‘비긴 어게인’의 가장 독특한 요소는 ‘스튜디오가 아닌 도시 전체를 녹음실로 삼는다’는 설정이다. 댄과 그레타는 뉴욕의 거리, 지하철, 옥상, 공원 등 다양한 공간에서 음악을 녹음하며 앨범을 제작한다. 이 방식은 단지 독창적인 콘셉트가 아니라, 영화의 정서적 진실을 반영한 장치다. 음악은 어디에서든 울릴 수 있고, 진심은 기술보다도 공간과 사람의 감정에 의해 완성된다는 믿음이 이 영화의 중심에 있다. 각 노래는 장소의 감성과 두 사람의 상태를 반영한다. 예컨대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녹음하는 장면에선 음악이 해방감을 주고, 옥상에서는 자유로움이, 비 오는 날 거리에서는 애틋함이 묻어난다. 이 모든 장면은 단순히 사운드를 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그레타와 댄이 각자의 삶에서 잃어버렸던 감정들을 되찾는 과정이다. 특히 댄은 음악 산업에서의 실패로 인해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끼지만, 그레타의 순수한 음악을 프로듀싱하며 다시금 ‘진짜 음악이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된다. 반면 그레타는 데이브와의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목소리와 감정으로 노래를 완성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로맨틱한 관계로 발전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영화는 사랑보다 ‘연대’에 집중한다. 둘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함께 창작하며 각자 삶으로 돌아간다. 본론에서 ‘비긴 어게인’은 음악이란 치유의 도구이자, 관계를 재구성하고 자아를 복원하는 가장 순수한 매개임을 거리와 감정으로 증명해 낸다.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위로

‘비긴 어게인’의 마지막은 화려한 성공이나 완전한 회복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는 조용하고 담백하게 각자의 삶을 보여준다. 댄은 아내와 딸과 다시 가까워지고, 그레타는 데이브에게 자신의 노래로 마음을 정리한 뒤 홀로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녀는 대형 음반사와의 계약을 거절하고, 음원 스트리밍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낸다. 이는 자본과 시스템이 아닌, 자신의 감정과 음악에 충실하고자 하는 선언이기도 하다. 영화는 이렇듯 ‘관계의 회복’이나 ‘자신에 대한 믿음의 회복’을 성공의 척도로 삼는다. ‘비긴 어게인’이라는 제목은 단지 음반의 제목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의 정서 상태를 상징한다. 우리는 누구나 삶에서 실패하고, 상처받고, 방향을 잃는다. 그러나 누군가와의 만남, 혹은 한 곡의 노래처럼 사소한 계기가 삶을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그 시작은 아주 조용하지만, 그 울림은 오래간다. 이 영화는 그래서 거창한 전환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감정을 조금씩 덜어내고,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과정을 따라간다. ‘비긴 어게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다시 시작해 볼 용기는 있냐”라고.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대단한 게 아닐 수 있다. 그냥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으며 오늘을 다시 살아보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치유’의 방식이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