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은 1920년대 할리우드의 영화 산업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전환되던 시기의 광기, 쾌락, 비극을 폭발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예술과 타락, 창조와 파멸의 모순을 강렬하게 묘사한다. 인물 간의 엇갈림과 그들이 맞이하는 찬란한 순간과 허무한 몰락을 통해 이 영화는 일종의 문명사적 서사로 확장되며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바빌론은 단순한 향수에 머물지 않고, 예술의 본질을 날카롭게 되묻는다.
영화의 광기, 그리고 황홀한 파멸의 시작
‘바빌론’은 1920년대 후반 할리우드 영화계의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의 이행이라는 격변의 시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당시 영화 산업은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쾌락, 섹스, 타락, 과도한 자본의 유입이 엉켜 있던 일종의 문명 붕괴적 상황이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이 혼돈의 시대를 마치 고대 문명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처럼 묘사하면서도, 그 속에서 창조되는 예술의 찬란함을 이중적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중심으로 구성되는데, 라틴계 이민자인 매니, 유색인종 여성 재즈 트럼페터인 넬리 라로이, 그리고 무성영화의 전설적 스타 잭 콘래드가 중심이다.
이들의 삶은 각기 다른 배경과 열망을 지니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술과 명성을 향한 갈망이라는 공통된 욕망 아래 엇갈린다. 셔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인물들의 급작스러운 상승과 몰락, 그 속의 예술적 황홀과 인간적 허무를 극단적으로 대비시켜 묘사함으로써, 영화를 단지 회고적 수단이 아닌 예술과 인간 욕망에 대한 성찰로 만든다.
첫 장면부터 보여지는 코끼리의 등장과 난잡한 파티는, 이 영화가 지극히 과잉된 감각의 향연이자, 영화 산업의 상징적 타락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힌다.
예술, 탐닉, 그리고 타락의 세 겹의 서사
‘바빌론’은 세 인물의 상승과 추락을 통해 예술이 어떻게 체계에 흡수되고, 인간의 욕망과 충돌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매니는 헐리우드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려는 이민자의 열망을 상징하며, 그의 시선은 영화 산업의 바깥과 안을 잇는 경계자적 시점이다.
그는 처음엔 세트를 정리하던 보조 인력으로 시작해, 점점 제작자로 성장하지만, 그 과정은 고통과 배신, 도덕적 타협의 연속이다. 넬리는 무성영화의 신인 배우로 등장하여 금세 스타가 되지만, 유성영화 시대로 접어들며 발음과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그녀는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있음에도 시대의 변화와 자본의 무자비함 속에서 소비되고 버려지는 인물로 그려진다. 잭 콘래드는 고전적 스타 시스템의 잔재로, 품격과 연기의 깊이를 갖춘 인물이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이라는 극단적 결말을 맞는다.
이들 세 인물의 이야기는 서로 교차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성공과 예술의 의미, 그리고 시대 변화에 따른 인간의 취약함에 대해 질문하게 만든다. 셔젤 감독은 이 모든 이야기를 음악과 편집, 이미지의 과잉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그 자체가 일종의 '영화 예술'에 대한 시적 진술처럼 느껴지게 한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영화 역사에 대한 몽타주 장면은 바빌론의 주제와 구조를 응축한 것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감정과 사유를 동시에 자극한다.
‘바빌론’이라는 미친 걸작이 던지는 질문
‘바빌론’은 정돈된 서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혼돈 속에 영화라는 매체가 품고 있는 원초적 에너지와 본질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데이미언 셔젤은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의 찬란함과 더불어 그것이 개인과 시대를 어떻게 삼키고 파괴하는지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영화는 단지 과거를 향한 향수에 젖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술과 대중문화에 어떤 태도로 접근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화려함 뒤에 존재하는 인간의 허무, 예술가의 불안정한 정체성, 시스템 속에서 소비되고 파괴되는 개인의 존재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문제의식이다.
바빌론은 말한다. 예술은 자유일 수 있지만, 체계 속의 자유는 늘 모순적이며, 때로는 자기파괴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사랑과 동시에 그것이 지닌 폭력성까지도 함께 목격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바빌론’은 단지 이야기의 완성도를 넘어, 영화라는 장르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삶을 비추고, 때로는 왜곡하는지를 날카롭게 성찰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스크린 속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도, 작은 전환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