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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파더 리뷰 – 기억의 미로 속에서 노년을 응시한 감정의 연극

by overinfo 2025. 5. 20.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더 파더(The Father)’는 치매를 겪는 노인의 시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심리극으로, 관객이 주인공 안소니와 함께 혼란, 상실, 두려움을 직접 체험하게 만드는 독특한 영화다. 앤서니 홉킨스의 명연기와 연극적 연출이 결합되어 노년의 고독과 인간 존재의 불완전함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노화에 대한 새로운 영화적 접근이자, 기억의 붕괴가 어떻게 삶을 해체하는지를 보여주는 감정의 퍼즐이다.

더 파더 리뷰

 

내 기억 속 당신은 누구입니까 – 무너지는 자아의 첫 조각

‘더 파더’는 관객에게 그저 ‘치매를 앓는 노인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관객이 직접 그 혼란과 붕괴를 경험하게 하는 구조로 설계된 감각적 체험이다. 영화의 주인공 안소니는 지적인 은퇴 노인으로, 딸 앤과 함께 런던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공간과 시간, 인물의 얼굴과 대사가 계속 뒤틀린다. 앤이 갑자기 다른 여자의 얼굴로 바뀌고, 아파트 구조가 조금씩 변하며, 같은 대화가 다른 어투로 반복된다. 관객은 안소니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가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을 그대로 공유하게 된다.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그저 안소니를 측은하게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관객을 그 인물의 주관적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며, ‘인지 기능이 무너지는 체험’을 시청각적으로 구현해 낸다. 영화는 시간의 선형적 흐름을 해체하고, 장면 사이의 논리적 연결을 의도적으로 끊으며, 관객에게 끝없는 “왜?”를 남긴다. 그리하여 서론에서 ‘더 파더’는 단순한 가족 드라마나 병리 묘사가 아니라, 인간 자아의 기반이 무너질 때 무엇이 남는가를 묻는 철학적 탐구이자, 가장 내밀한 감정의 보고로 출발한다.

 

존재의 해체와 감정의 조각들 – 기억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더 파더’의 본질은 ‘기억’의 해체다. 안소니는 단지 시간과 인물을 혼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감정까지 점차 잃어간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독립적이고, 판단력이 있으며, 타인을 신뢰할 수 있다고 믿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믿음은 무너진다. 딸 앤은 때로는 다정하고, 때로는 낯선 얼굴로 등장하고, 사위는 폭력적이었다가 친절해지며, 간병인은 모욕을 당하거나 따뜻한 존재가 된다. 이 모든 변화는 실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안소니의 인지 왜곡을 반영한 ‘내면적 편집’이다. 감독 플로리안 젤러는 연극적 공간 안에서 영화적 서사를 구현해 낸다. 인물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공간은 제한되며, 대사는 반복과 균열을 통해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설정은 영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장르’가 아니라,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장르’임을 입증한다. 관객은 안소니가 느끼는 불신, 고독, 모멸감을 고스란히 따라가며, 점차 ‘이야기의 논리’보다 ‘감정의 진실’을 쫓게 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안소니가 스스로의 붕괴를 완전히 인식하는 순간이다. 그는 마지막에 “난 내 엄마가 보고 싶어요”라고 흐느낀다. 이 장면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가 가장 원초적인 본능으로 되돌아가는 장면이다. 본론에서 ‘더 파더’는 병리적 묘사나 신파적 감정 유도에서 벗어나, 인간 존재의 불안정성과 관계의 본질을 깊이 있게 탐색하며, 기억이 곧 인간의 본질임을 역설한다.

 

기억은 사라져도 사랑은 남는가 – 인간을 붙드는 마지막 끈

‘더 파더’는 결코 희망적인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더 진실된 위로를 건넨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소니는 침대에 누워, 어린아이처럼 두려움에 떨며 “난 내 나뭇잎을 모두 잃었어요”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단지 시적인 비유가 아니라, 그의 세계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드러내는 절규다. 그러나 바로 그 옆에서 간병인은 부드럽게 그의 손을 잡아주며 말한다. “괜찮아요. 여기 있어요.” 이 짧은 대화는 기억이 사라진 자리에도 관계와 감정은 여전히 존재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안소니는 이름도, 시간도,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를 수 있지만, 그 손길 하나에서 전해지는 온기만은 받아들인다. 그것이 이 영화가 건네는 마지막 희망이자, 삶을 지탱하는 가장 근원적인 힘이다. 플로리안 젤러는 이 영화로 인간 정체성의 근간인 ‘기억’을 철저히 해체하면서도, 그 빈자리를 ‘사랑’과 ‘공감’이라는 감정으로 메워준다. ‘더 파더’는 단지 노화와 병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마주하게 될 불안과 상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인간일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다. 이 영화는 관객에게 직접적인 눈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서서히 무너지는 정서 구조 안에서, 조용히 울게 만든다. 기억은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온기와 함께한 시간은, 그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그 흔적은 우리가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마지막 끈이다. ‘더 파더’는 바로 그 끈에 대한 영화다. 조용하지만 결코 잊히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