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더 메뉴 리뷰 – 미식의 예술과 계급 풍자가 공존하는 불편한 만찬

by overinfo 2025. 6. 8.

‘더 메뉴(The Menu)’는 미식과 계급, 소비자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긴장감 넘치는 미스터리로 구성된 영화다. 고급 식문화의 예술성과 그에 얽힌 권력, 허영심을 냉소적으로 해부하며, 미각의 세계에 담긴 위선과 진실을 드러낸다. 관객은 한 끼의 코스 요리 속에 감춰진 심리 게임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본질을 엿보게 된다.

더 메뉴 리뷰
 

섬으로 초대된 사람들 –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심리전

‘더 메뉴’는 전용 선박을 타고 외딴섬으로 향하는 손님들로 시작된다. 이들은 모두 유명 셰프 슬로윅(랄프 파인즈)의 미슐랭급 레스토랑 ‘호손’에서 제공하는 수백만 원짜리 코스 요리를 맛보기 위해 온 상류층 인물들이다. 영화 초반, 관객은 그들과 함께 이 고립된 공간에 입장하며 일종의 불편함을 느낀다. 식사에 초대된 인물들은 외견상 매우 다양하다. 거만한 음식 평론가, 권위적인 투자자, 과거 셰프와 인연이 있는 중년 여성, 인스타 셀럽 같은 유튜버, 무기력한 부부, 그리고 영화의 중심에 선 커플 타일러(니콜라스 홀트)와 마고(안야 테일러 조이) 등이다. 특히 마고는 원래 초대받지 않은 인물로, 타일러가 전 여자친구 대신 데려온 동행이다. 이 ‘불청객’은 이후 줄거리 전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열쇠가 된다. 서론에서 영화는 고급 요리를 단순한 ‘음식’ 이상의 개념으로 다룬다. 셰프는 손님들에게 철저한 규율을 강요하고, 음식은 단순한 섭취의 대상이 아닌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철학적 선언으로 제시된다. 각 코스는 슬로윅 셰프의 삶과 세계관을 반영하며, 동시에 손님들에 대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관객은 이 점에서 불안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왜 이들은 이 섬에 초대되었는가? 왜 이 식사는 점점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고 있는가? 영화는 정적인 미장센과 절제된 대사, 그리고 묘하게 서늘한 음악을 통해 긴장감을 극도로 끌어올린다. ‘더 메뉴’는 초반부에 마치 고급 요리 프로그램이나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하지만, 곧 그 이면에 감춰진 비틀림을 드러낸다. 음식의 본질과 그것을 둘러싼 계급적 위계, 소비의 무의미함, 셰프와 손님의 권력관계 등이 은근한 불협화음처럼 스며들며, 관객을 점점 미로 속으로 안내한다.

 

셰프의 요리 철학 – 창조자와 소비자의 파국

슬로윅 셰프는 단순한 요리사가 아니다. 그는 일종의 교주이자 예술가이며, 동시에 심판자다. 그의 코스 요리는 맛을 위한 것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은 선언이다. 각 요리에는 손님들에 대한 은밀한 조롱과 비판이 숨겨져 있고, 코스가 진행될수록 식사는 점점 공연 예술의 형태를 띠며, 긴장과 충격을 동반한다. 셰프는 손님들을 향해 “당신들은 단 한 번도 진짜 배고픔을 느껴본 적이 없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고급 미식 문화가 더 이상 ‘필요’가 아닌 ‘허영’을 위한 소비로 변질되었음을 지적한다. 식사는 생존이 아니라 ‘인스타그램용 사진’이 되어버린 시대, 그는 그 허상을 무대 위에 올려 조롱하는 것이다. 특히 타일러는 ‘셰프 덕후’ 임에도 불구하고 요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셰프가 내린 도전을 망신스럽게 수행한다. 이는 ‘진정한 애호가’를 자처하면서도 실상은 겉핥기에 불과한 대중 소비자의 허영을 풍자한다. 반면 마고는 처음부터 이 세계에 어울리지 않으며, 셰프의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의심한다. 그녀는 일종의 ‘관찰자’이자 ‘불순한 진실’의 상징이다. 슬로윅은 결국 마고에게 특별한 시선을 보낸다. 그는 그녀가 ‘고객’이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의 입장, 즉 과거 자신이 겪었던 빈곤과 현실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느낀다. 영화는 이 대립 구도를 통해 창조자와 소비자,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심리적 간극을 탐색한다. 결정적인 순간, 셰프는 자신과 손님들 모두가 파국으로 향하는 여정에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가 준비한 마지막 코스는 ‘자기 소멸’이다. 그는 미식이라는 이름 아래 쌓아온 모든 허구와 위선을 불태우고자 한다. 이 무대는 단지 음식이 아니라, 계급적 구조와 소비문화에 대한 폭로다. 본론은 예술의 소비가 어떻게 창작자를 소진시키는지를 비유적으로 그려낸다. 셰프는 언젠가부터 ‘음식의 즐거움’을 잃었고, 오직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는 퍼포먼스를 반복할 뿐이었다. 창조자가 자신의 창작물을 증오하게 된 순간,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지옥이 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강하게 던진다.

 

구원과 파멸 – 햄버거와 인간성의 복원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마고가 슬로윅 셰프에게 “맛있는 햄버거를 만들어 달라”라고 요청하는 장면이다. 이는 이 영화의 모든 메시지를 요약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녀는 고급 미식이 아닌, 단순하고 진실된 음식을 요구하며, 셰프에게 요리의 본질을 상기시킨다. 슬로윅은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며, 햄버거를 요리하고, 마고는 그걸 먹고 “맛있다”라고 말한다. 이 짧은 장면은 미각의 본질이 무엇인지, 예술의 시작이 어디였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음식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도구이며, 그 출발점은 복잡한 코스나 고급 재료가 아니라 ‘진정성’이다. 셰프는 이 순간 자신이 잃어버렸던 것을 잠시나마 되찾게 되고, 마고를 유일하게 섬에서 내보낸다. 이후 셰프는 마지막 코스 ‘스모어’를 통해 손님들과 함께 자폭한다. 그들은 모두 마치 연극의 클라이맥스처럼, 스스로 만들어낸 세계 속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고급 요리를 비꼬는 디저트 ‘스모어’는 미국 대중음식의 상징이자, 예술의 아이러니를 담은 완벽한 결말이다. 결국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먹고, 무엇을 위해 창조하며,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가?” 미식이라는 테마 아래, 영화는 자본과 예술, 계급과 소비라는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요리라는 매개로 풀어냈다. 관객은 이를 통해 자신이 소비하는 모든 것이 누구의 피로 이루어졌는지를 되돌아보게 된다. ‘더 메뉴’는 불편하지만 아름다운 영화다. 눈부신 영상미와 절제된 연출, 강렬한 상징과 풍자가 어우러져 한 편의 서늘한 시로 완성되었다. 이 영화는 미식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너머의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마고가 홀로 배를 타고 섬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 손에 든 햄버거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인간성과 현실을 상징한다. 그리고 관객은 조용히 깨닫는다. 가장 맛있는 음식은, 허영이 아닌 진심으로 만들어진 한 끼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