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는 학창 시절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가 수십 년에 걸쳐 치밀하게 복수를 준비해 가는 과정을 그린 복수극이다. 단순한 응징을 넘어선 이 작품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위치, 고통의 지속성과 인간성의 잔혹함을 통해 깊은 윤리적 질문을 던진다.
상처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복수는 그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더 글로리’는 단순한 복수극이 아니다. 이 드라마는 정서적 잔혹함과 복수의 정당성, 그리고 인간 존엄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복잡한 감정의 궤적을 치밀하게 담아낸 심리극이다. 주인공 문동은(송혜교 분)은 고등학생 시절 끔찍한 학교폭력의 피해자였으며, 그 고통은 단순히 육체적 폭력에 국한되지 않는다. 괴롭힘을 당한 그녀는 교사, 부모, 사회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하고 고립된 채로 청춘을 빼앗긴다. 동은은 그 시절을 지우는 대신 기억 속에 각인시키고, 생존이라는 이름의 침묵 아래에서 복수를 계획한다. 그녀의 복수는 감정적인 분노에서 비롯된 즉흥적 반격이 아니다. 오히려 수년간의 고통과 그 고통을 외면한 모든 사람들에게 철저하고 조용한 방식으로 접근한다. 그녀는 가해자들의 인생에 파고들고, 관계를 조작하며, 스스로를 가해자의 눈높이에 맞춘다. 복수는 목적이자, 동은의 존재 이유가 된다. 이 서사는 피해자가 단지 용서하거나 ‘잊고 살아야 한다’는 뻔한 메시지 대신, 피해자가 고통을 어떻게 끌어안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상처가 치유되거나 잊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어지고 차갑게 굳어간다는 진실을 고발한다. 그리고 그 고통이 어느 순간 ‘정의’라는 이름으로 모습을 바꿔 복수의 불씨가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더 글로리’는 시청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복수는 정당한가?”, “피해자의 분노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가?”, “그 복수는 과연 피해자를 구원할 수 있는가?” 이는 단순히 극 중 서사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 속에서도 반복되는 폭력의 구조와 그것이 남긴 흔적에 대한 자각을 촉발시킨다.
복수는 정의인가, 또 다른 폭력인가
문동은의 복수는 매우 정교하고 치밀하다. 그녀는 가해자 박연진(임지연 분)을 중심으로, 과거에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의 현재 삶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그들의 허위와 위선을 벗겨내기 위한 전략을 실행한다. 복수는 단순히 되갚는 행위가 아니라, 가해자들에게 자신이 느꼈던 공포와 절망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과정이다. 그녀의 계획에는 감정적 파열이 없다. 그 차가움이 오히려 복수의 무게를 더한다. 드라마는 이 과정에서 가해자들의 이중성과 허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명망 있는 삶을 사는 듯한 가해자들은, 실상은 부패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이기적인 인물들이다. 동은은 이들의 틈을 파고들며 그 위선을 무너뜨리고, 스스로가 고통의 대상이 되었던 그 시절과 마주하게 만든다. 그 과정에서 동은은 관찰자이자 조종자, 때론 심판자의 역할을 넘나든다. 하지만 ‘더 글로리’는 복수를 낭만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동은이 스스로를 점점 더 갉아먹는 모습, 그리고 복수 후에도 결코 완전한 구원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그려진다. 이는 복수가 단지 가해자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아닌, 피해자 자신에게도 또 다른 상처와 공허함을 남길 수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이 드라마는 주변 인물들의 역할도 중요하게 다룬다. 하도영, 주여정과 같은 조력자들은 동은의 복수 여정에 함께하면서도, 그녀가 놓친 감정이나 인간성을 비춰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특히 주여정은 동은의 복수를 이해하고 지지하면서도, 그 복수의 끝에 무엇이 남을지 두려워하는 인물이다. 이를 통해 드라마는 복수의 정당성과 함께 그 끝에 남는 감정적, 윤리적 공허함까지도 균형 있게 다룬다. 본론에서는 ‘더 글로리’가 보여주는 복수의 두 얼굴—정의와 폭력—을 중심으로, 문동은이라는 인물이 어떤 감정과 윤리의 경계에 놓여 있는지를 분석했다. 이 드라마는 단지 통쾌한 복수극이 아니라, 상처받은 자가 세상에 맞서는 방식에 대한 철저한 성찰이기도 하다.
복수의 끝, 구원은 존재하는가
‘더 글로리’는 마침내 동은이 복수를 완수하게 되는 순간, 우리가 흔히 기대하는 ‘카타르시스’보다는 묘한 공허함을 전한다. 가해자들은 파멸하고, 그들의 삶은 붕괴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동은은 웃지 않는다. 그녀의 삶에서 빼앗긴 시간과 상처는 결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복수는 과거를 지운 것이 아니라, 과거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 수단이었을 뿐이다. 결국 ‘더 글로리’는 복수가 정당한지 아닌지를 논하는 것을 넘어, 인간이 타인의 고통에 얼마나 둔감할 수 있으며, 피해자가 살아가는 데 있어 얼마나 큰 용기와 인내가 필요한지를 말한다. 문동은의 복수는 구원이라기보다는 자존의 증명이었고, 그녀가 스스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일종의 의식이었다. 그 과정에서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진정한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는 피해자에게 어떤 사회적 연대를 제공하고 있는가?” 이 작품의 진짜 힘은 현실에 있다. 현실의 학교폭력, 가해자 중심의 구조, 피해자의 고립된 싸움을 떠올리게 하며, 단지 드라마를 넘어서 우리 사회가 피해자에게 어떤 책임을 다하지 못했는지를 날카롭게 꼬집는다. 복수는 이 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피해자가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려는 최후의 선택일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더 글로리’는 묻는다. 복수가 구원이 될 수 있는가? 드라마는 그 질문에 명확한 해답을 내리지 않는다. 대신, 복수를 통해도 채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음을 보여주고, 그럼에도 인간이 다시 살아가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를 조용히 들려준다. 구원은 누군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문동은의 마지막 눈빛은 말한다. “나는 끝났지만, 이제 다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