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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매드랜드 리뷰 – 떠돌이의 삶이 품은 고독, 자유 그리고 존엄

by overinfo 2025. 6. 3.

클로이 자오 감독의 ‘노매드랜드(Nomadland)’는 미국 경제 불황 이후 주거를 잃고 밴에서 살아가는 한 여성의 여정을 통해, 현대 자본주의의 그늘 속에서도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조명하는 작품이다. 실존하는 노매드들과의 교류, 다큐멘터리적인 연출, 그리고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섬세한 연기가 어우러져, 이 영화는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노매드랜드 리뷰
 

정착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 – 삶을 다시 묻는 여정의 시작

‘노매드랜드’는 미국 서부의 황량한 풍경 속에서, 집을 떠나 도로 위를 살아가는 한 여성 ‘펀’의 삶을 따라간다. 그녀는 남편을 잃고, 경제 붕괴로 인해 거주하던 도시 엠파이어가 사라진 뒤, 낡은 밴 하나를 집 삼아 유랑을 시작한다. 영화는 그녀의 처지를 동정하거나 미화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가 이동하며 만나는 사람들과 풍경을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해 조용히 성찰하게 만든다. 서두에선 마치 현대의 미국이 한 여성에게 가혹한 현실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존의 창고에서 일하고, 캠핑장에서 청소를 하며, 겨울엔 바람을 피할 장소를 찾아 떠도는 일상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러나 그녀는 끊임없이 자기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집이 없다. 하지만 집이 없다고 해서, 내가 없는 것은 아니다"라는 대사는 그 어떤 설명보다 강렬하다. 영화는 정주하지 않는 삶이 사회에서 얼마나 소외되었는지를 조명하는 동시에, ‘집’이라는 개념이 단지 물리적 공간인지,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의 총합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서론에서 ‘노매드랜드’는 세상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히려 진짜 삶의 윤곽을 그려낸다. 안정과 성공을 좇는 전통적 삶의 틀 밖에서도, 충분히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펀의 여정은 단지 거리의 이동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되묻고, 남겨진 이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감정의 여정이기도 하다.

 

노매드들의 초상 – 유랑이 선택이 될 수 있는가?

본론에서 영화는 펀이라는 개인의 서사를 넘어, ‘노매드’라 불리는 수많은 이들의 삶을 조명한다. 놀라운 점은 이들 중 다수가 실제 인물이며, 연기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그대로 화면에 담았다는 것이다. 밥 웰스, 린다 메이, 스웽키 같은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그들의 이야기는 저마다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서 소외된 자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어떤 이는 경제적 이유로, 어떤 이는 정신적 고통을 피해 유랑을 선택했으며, 또 어떤 이는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인생을 정리한다. 펀 역시 이들과 교류하면서 점차 ‘정착의 부재’가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 될 수 있음을 배워나간다. 물론 그녀에게도 기회는 있다. 친절한 가족의 집에 머물 수 있었고, 데이브라는 인물과 함께 정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다시 도로 위로 나선다. 이는 결핍이나 도망이 아니라,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자유를 택한 것이었다. 영화는 이러한 결정을 로맨틱하게 그리지 않는다. 도로 위의 삶은 여전히 춥고 고단하며, 때론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엔 진실한 교류, 말 없는 연대, 시간의 본질이 있다. 본론에서 ‘노매드랜드’는 현대 사회에서 주류가 아니어도, 조용하고 존엄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함을 알린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가 단지 배제된 자들의 비극이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형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착과 성공만이 전부가 아닌, 떠도는 삶의 온기와 품위를 담아낸 것이다.

 

끝이 아닌 계속되는 길 – 노매드의 시간은 지금도 흐른다

영화의 마지막, 펀은 다시 도로 위에 서 있다. 그녀는 떠나간 이들과 조용히 작별하고,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는 엠파이어를 찾아가 그곳을 바라본다. 허물어진 공장, 휑한 거리, 사라진 집. 하지만 그녀는 그곳에서 눈물 대신 담담한 시선을 보낸다. 삶은 이미 지나갔고, 남은 것은 앞으로의 시간뿐이다. ‘노매드랜드’는 명확한 결말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삶은 계속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삶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해진 틀이 없는 삶, 가고 싶은 곳으로 가며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무는 삶. 이터널스가 영원의 질문을 다루었다면, 노매드랜드는 현재의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엄을 이야기한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관객은 단지 펀의 이야기를 본 것이 아니라, 삶이라는 여정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안정은 누구에게나 필요한가? 소속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가? 우리가 진정 원하는 삶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노매드랜드’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보여줄 뿐이다. 고요한 하늘, 불어오는 바람, 낡은 밴, 그리고 도로 위의 한 사람. 결론에서 이 영화는 관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다. 단지 한 사람의 선택을, 고통을, 그리고 그 안의 자유를 보여주며, 말한다. “정착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것이 바로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위로이자 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