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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의 부장들 리뷰 – 권력과 배신, 역사 속 실체를 마주하다

by overinfo 2025. 6. 19.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26 사태를 중심으로, 권력의 정점에 있던 이들이 벌이는 정치적 암투와 심리전을 긴박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박정희 정권 말기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현대사에서 반복되는 권력의 속성과 인간의 욕망, 배신의 논리를 치밀하게 파헤친다.

남산의 부장들 리뷰

 

권력의 심장부, 그 내부를 들여다보다

2020년 개봉한 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인 1979년 10.26 사태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사건은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가 대통령 박정희를 직접 사살함으로써 발생한 정권 붕괴의 서막이었다. 이 영화는 그 한가운데 있었던 권력자들의 시선으로, 암투와 모략, 불안과 배신의 정서를 촘촘하게 그려낸다. 영화는 실존 인물들을 모델로 하되, 각 인물의 실명 대신 ‘대통령’, ‘중앙정보부장’, ‘경호실장’, ‘전 중앙정보부장’ 등의 호칭을 사용하여 상징성을 강화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특정 인물의 사연에 몰입하기보다는, ‘권력이라는 구조’ 자체에 대한 감정을 더 강하게 이입하게 된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970년대 말 미국에서 활동하던 전직 중앙정보부장의 증언으로 시작되며, 한국 정치의 어두운 이면을 조명한다. ‘남산의 부장들’은 단지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권력 내부의 불균형, 긴장감, 감정의 골에 주목한다.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이병헌)은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면서도, 동시에 권력의 그림자 속에서 점점 고립되어 간다. 경호실장 곽상천(이희준)은 오히려 그 신임을 넘어서 권력의 핵심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인물이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심리전과 충돌은, 하나의 권력체가 어떻게 붕괴하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드라마다. 서론에서는 ‘남산의 부장들’이 단순히 10.26 사건의 재현에 머무르지 않고, 권력이라는 구조 자체를 해부하는 작업이라는 점에 주목하고자 한다.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하되, 이 영화는 권력자들이 겪는 심리와 판단, 그 뒤에 도사린 불안과 결정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본질을 탐구한다.

 

사라진 신뢰와 균열의 시작

‘남산의 부장들’은 권력 내부의 균열이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방식으로 파국에 이르게 되는지를 사실적이면서도 절제된 감정으로 보여준다. 김규평은 대통령과 40년 지기였지만, 경호실장 곽상천의 등장 이후로 그 입지는 점점 줄어든다. 대통령은 끊임없이 부하들 간의 경쟁을 유도하고, 서로를 견제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권력을 유지한다. 그 속에서 김규평은 자신이 더 이상 대통령에게 필요하지 않은 존재로 전락해 가는 과정을 체감한다. 이 영화의 핵심은 ‘배신’이라는 키워드에 있다. 그러나 이 배신은 단순한 배반이 아니라, 권력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탈’이다. 김규평은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과 국가를 향한 책임 사이에서 균열을 겪는다. 그의 선택은 이상을 위한 결단이었을까, 아니면 사적인 분노와 배제감의 발현이었을까? 영화는 이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오히려 이 불분명함이야말로 현실 정치의 본질이라는 듯, 인물의 감정선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특히 이병헌의 연기는 냉철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내면의 혼란을 절제된 방식으로 표현해 낸다. 그는 얼굴 표정 하나 없이도 수많은 심리를 전달하며, 한 권력자의 무너지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곽상천 역의 이희준 역시 거칠지만 치밀한 인물로서 경계심과 공격성을 함께 담아낸다. 이 두 인물의 충돌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이 아닌, 인간 존재와 존재 이유의 대립이기도 하다. 또한 영화는 미장센과 음악, 조명, 카메라워크를 통해 인물들 사이의 긴장을 고조시킨다. 회의실 장면에서는 공간의 폐쇄성과 고요함이, 미국 워싱턴 장면에서는 외교적 고립감이, 대통령 관저에서는 절대 권력자의 초월적 위치가 시각적으로 묘사된다. 이처럼 영화는 정서적 리얼리즘을 통해 권력의 실체를 말없이 시청각으로 드러낸다. 본론에서는 권력 내부에서 발생하는 균열과 배신의 과정, 그리고 그것이 인간 개인의 감정과 선택에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중심으로 분석했다. 특히 김규평이라는 인물을 통해 ‘배신’이란 말에 담긴 복합적인 감정과 현실을 조명하고자 한다.

 

권력의 끝, 인간의 시작

‘남산의 부장들’의 마지막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한 장면으로 귀결된다. 김규평은 결국 대통령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 순간, 그는 단지 대통령을 제거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해 있던 체제 전체를 부정한 것이다. 그러나 그 결단 이후 남는 것은 해방이 아니라 깊은 허무와 비극이다. 영화는 이 마지막 장면을 조용하게, 그러나 무겁게 마무리한다. 어떤 감정의 폭발도 없이, 단지 선택의 무게만이 남는다. 이 영화는 그 어떤 정치 영화보다도 인간적인 질문을 던진다. 권력은 왜 배신을 낳는가? 충성은 언제 의심으로 바뀌는가? 우리는 과연 어느 순간 ‘결단’을 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한 존재인가? 영화는 이 질문들에 대해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들을 스크린 너머로 밀어내며, 관객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든다. 현대 정치에서도 이 영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권력의 집중, 불신의 구조, 감시와 암투는 시대와 관계없이 반복된다. ‘남산의 부장들’은 과거를 복기함으로써, 오늘날의 권력 구조를 다시 성찰하게 만드는 힘을 가진다. 단지 역사적 회고가 아닌, 현재와 미래를 위한 질문이기도 하다. 결국 이 영화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참여하고 있는 권력이라는 무형의 연극에 대한 기록이다. 권력의 끝은 파국으로 남지만, 그 파국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새롭게 질문받는다. 이 영화는 조용히 말한다. “그 누구도 권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권력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는 인간의 몫이다.” 이 메시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