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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리뷰: 계급과 공간이 교차하는 복합 미장센의 정수

by overinfo 2025. 5. 15.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도, 블랙코미디도 아니다. 이 영화는 빈부격차와 계급구조, 사회적 위선과 인간 본성을 절묘하게 담아낸 현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반지하와 고급주택, 냄새와 계단, 그리고 비가 내린 밤의 두 얼굴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배치된 상징적 요소들은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가 된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한 세계적 수상 기록을 통해 예술성과 사회적 메시지를 동시에 증명한, 시대를 정의한 걸작이다.

기생충 리뷰
 

두 개의 집, 두 개의 세계: 기생충의 시작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하나의 공간, 두 개의 가족으로부터 출발한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 가족은 특유의 유쾌함과 끈기를 지녔지만, 그들의 삶은 절대적으로 부족함 속에 놓여 있다. 일용직 아르바이트, 도둑 와이파이, 곰팡이와 습기로 가득 찬 방은 한국 사회의 하층민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반면, 박 사장(이선균)의 가족이 사는 고급 주택은 넓고 환하게 트여 있으며, 잘 정돈된 정원과 모던한 인테리어는 외적으로 완벽한 세계를 상징한다. 이 두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닌, 영화 전체를 이끄는 핵심 상징물이다. 봉준호 감독은 ‘공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계급과 권력, 위계의 문제를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다.

 

계단은 위와 아래를 잇는 통로이자, 올라가고 내려가는 인간의 사회적 위치를 은유한다. 기택 가족이 박가의 집으로 잠입해 하나씩 일자리를 얻는 과정은 단순한 사기극이 아닌, 하층민이 상류 계급의 시스템 속으로 침투하려는 시도로 그려진다. 영화 초반의 템포는 유쾌하고 빠르지만, 그 안에는 이미 균열의 조짐이 숨어 있다.

 

박가의 집에 입성하면서 겉보기에 안정된 구도가 만들어지지만, 실제로는 박가조차도 불안정한 사회 구조 속에서 위태롭게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금씩 드러난다. 영화는 처음부터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생충’은 과연 누구인가? 정말 숙주와 기생자의 관계는 명확하게 나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영화 내내 은유와 상징, 그리고 아이러니 속에서 반복된다.

 

냄새와 비, 계단: 미장센으로 그린 계급의 서사

‘기생충’의 위대함은 그것이 얼마나 많은 메시지를 “보여주는가”에 있다. 봉준호 감독은 계급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인물들의 위치, 동선, 시선 처리, 공간 배치로 모든 것을 말한다. 가장 상징적인 요소 중 하나는 바로 ‘냄새’다. 박 사장은 기택의 냄새에 대해 ‘지하철 냄새 같다’고 표현한다.

 

이 짧은 대사는, 냄새라는 감각을 통해 계급 차이를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아무리 겉으로 흉내를 내고, 좋은 옷을 입고, 언어를 모방해도, 냄새만큼은 숨길 수 없다. 이는 하층민이 절대적으로 넘을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경계’이며, 인간이 타인을 가장 본능적으로 구별하는 방식이다.

 

또한 영화의 결정적인 장면인 ‘폭우가 쏟아지던 날’은 상징의 집합체다. 부유한 박가에게 비는 정원을 적셔주는 낭만적 자연현상이지만, 기택 가족에게는 반지하를 잠기게 하는 재난 그 자체다. 이 장면은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 살지만 전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이들’의 현실을 압도적으로 보여준다.

 

이때 카메라는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기택 가족이 비를 뚫고 자신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따라간다. 이 긴 장면은 영화 전체에서 가장 시적인 동시에 가장 슬픈 장면으로, 시각적으로 계급의 수직 구조를 그대로 그려낸다. 또한 숨겨진 지하 공간의 존재는 ‘기생충’이라는 제목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현하는 장치다.

 

지하 벙커에서 살아온 전 집사 부부는 단순한 반전 요소가 아니라, ‘더 아래의 세계’가 존재한다는, 우리가 외면하고 있던 또 다른 현실의 상징이다. 이들은 말 그대로 사회에서 ‘삭제된 존재’이며, 기택 가족조차도 이들을 혐오하고 거부한다. 이러한 관계망은 ‘기생충’이라는 단어 자체가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누구나 타인의 삶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다.

 

기생충, 시대의 얼굴이 된 작품

‘기생충’은 단지 한국 영화사의 전환점이 된 작품이 아니라,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초상이다.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통했다는 사실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계급 갈등과 불평등, 그 안에서의 인간성 상실이 결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영화는 관객에게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질문을 남긴다. 누구의 잘못인가? 기택이 칼을 들게 된 그 순간, 그는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 영화의 마지막, 기우가 집을 사겠다는 환상은 마치 희망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사실 ‘이루어질 수 없는 꿈’ 임을 관객은 알고 있다. 이 결말은 봉준호 감독 특유의 블랙유머이자 사회적 냉소다.

 

‘기생충’은 사회 구조 속에 갇힌 인간들이 서로를 물고 물리는 구조를 통해, 우리가 어떤 시스템 안에서 얼마나 부조리하게 살아가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단순한 절망에 머물지 않는다. 인간의 연대 가능성과,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질문, 그리고 예술이 사회를 비추는 방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담아낸다.

 

촘촘한 구성과 강렬한 상징,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무엇보다 봉준호 감독의 연출력은 이 영화를 시대의 얼굴로 만들었다. 기생충은 그 자체로 하나의 상징이며, 앞으로도 수많은 해석과 논의의 중심에 설 작품임이 분명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질문은 남았다. 우리는 지금 누구의 집에, 어떤 층에서 살아가고 있는가?